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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인문

조선왕조 스캔들: 조선을 뒤흔든 왕실의 23가지 비극 /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

by It works 2016. 9. 26.


 



우리가 몰랐던 조선왕조 500년 최악의 스캔들!
왕과 왕실 사람들이 감추고 싶었던 23가지 욕망과 암투

역사 기록을 왜곡한 정조, 무당에게 미혹된 명성황후…
욕망과 음모가 가득한 조선왕조 민낯의 역사 공개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과거 사람들의 일과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현재 사람들의 이야기도 지나면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자고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재미와 교훈을 얻곤 한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깊이

 알게 되면 그를 이해하게 되고, 또 그 이해가 깊어지면 좋아하게 되고 심지어는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조선 시대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조선 왕실 사람들의 스캔들을 다루었다. 스캔들은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나쁜 이야기이다. 하필 스캔들을 다룬 이유는 그들의 스캔들을 통해 보고 듣는 이들에게 재미와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너나없이 실수하고 잘못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배움을

통해 그 실수와 잘못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비극을 부른 세종의 막내아들 편애, 기록 문화를 중시했지만 역사 기록을 왜곡한 정조, 세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영조의 금주령, 격한 질투심 때문에 성종에게 이혼당한 폐비 윤씨, 무당에게 미혹되어

나라를 기울게 한 명성황후……이는 우리가 흔히 알던 훌륭한 왕, 고고하고 품위 있는 왕실의 모습이

아니다. 적나라한 이런 모습은 감추고 싶어 했던 비화인 것이다. 비화를 통해 우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교훈을 타산지석 삼아 새롭게 살 수 있다. 이 책에서 주고자 하는 교훈과

메시지는 무엇일지 들여다보자.



  




 

 


 



서문

제1장 잘못된 길에 발을 들인 군주들
이성계의 복수심,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다
한글을 금지한 연산군, 주색에 빠져 사람의 도리를 잊다
조상의 무덤을 도굴당한 선조, 거짓으로 복수하다
기록 문화의 지평을 넓힌 정조, 역사 기록을 왜곡하다

제2장 왕과 세자, 그 지독한 부자의 악연
태조 이성계의 사리 수집, 아들과 손자에게 부정되다
세종의 막내아들 편애, 비극을 부르다
전쟁 포로가 된 선조의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
인조, 소현세자를 병들어 죽게 하다
영조의 금주령,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다

제3장 권력이 만들어낸 왕실의 비극
조선 시대 최고의 바보 왕자, 제안대군
공포심에 찌든 중종, 강제로 이혼당하다
조카 인조의 왕권에 도전한 삼촌 흥안군
효종의 남다른 우애, 세 형제의 비극을 불러오다
왕이 되고 싶었던 고종의 이복형, 이재선

제4장 궁중 여인들의 기막힌 일생
정희대비와 인수대비의 자비심, 여종을 권력 실세로 만들다
사랑과 관심에 목말랐던 폐비 윤씨, 성종에게 이혼당하다
인목대비 김씨, 재물을 탐하다
광해군의 왕비 유씨와 세자빈 박씨, 굶어 죽다

제5장 외세 앞에 무기력했던 지도자들
결단력이 부족한 고종황제, 역술가에게 빠져들다
명성황후, 무당에게 미혹되어 나라를 기울게 하다
개화기의 친일 혁명가 박영효, 그는 누구인가
박영효, 김옥균과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다
박영효, 암살단을 조직해 갑신정변을 일으키다
     






저 : 신명호 
 

申明鎬 1965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역사를 특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
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강원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사를 전공하여 『조선초기 왕실편제에 관한 연구』
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를
거쳐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사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조선시대의 왕과 왕실 문화를 연구해왔다. 그는 주로 자신이
연구해온 조선 시대 왕과 왕실에서 소외되었던 계층과 인물들, 역사를 발굴하여 책을 써오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조선왕비실록』을 통하여 남성 중심의 역사를 여성으로서 돌이켜보는
 색다른 작업을 했었고, 이 역시 독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갔다. 또한 궁녀라는 특수한 계층에 주목한
 『궁궐의 꽃, 궁녀』를 통하여 선출방법, 조직구조, 일과 임금 등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부활시키는 데 앞장서왔다.

그렇게 생소한 소재들을 다룸에도 그의 글이 설득력을 갖고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조선시대사를
...
1965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역사를 특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강원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사를 전공하여 『조선초기 왕실편제에 관한 연구』
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를 거쳐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사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조선시대의 왕과 왕실 문화를 연구해왔다.
그는 주로 자신이 연구해온 조선 시대 왕과 왕실에서 소외되었던 계층과 인물들, 역사를 발굴하여
 책을 써오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조선왕비실록』을 통하여 남성 중심의
역사를 여성으로서 돌이켜보는 색다른 작업을 했었고, 이 역시 독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갔다.
또한 궁녀라는 특수한 계층에 주목한 『궁궐의 꽃, 궁녀』를 통하여 선출방법, 조직구조,
일과 임금 등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부활시키는 데 앞장서왔다.

그렇게 생소한 소재들을 다룸에도 그의 글이 설득력을 갖고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조선시대사를 꿰뚫고 있는 그의 사학지식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조선 왕실의 자녀 교육법』
이라는 저서에서 왕실에 대한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왕의 후보들을
교육시켰던 시간과 교과목, 또래 친구인 배동 선발, 실무 경험 습득 과정을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실증적으로 복원해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일반인들이 잘못 가지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통념들을 극복하도록 도우며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작가이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왕비실록』, 『왕을 위한 변명』, 『조선의 왕』,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궁궐의 꽃, 궁녀』, 『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
『조선의 궁궐에서 일했던 사람들, 궁』,『조선공주실록』(역사의 아침, 2009),
『한국사를 읽는 12가지 코드』(다산초당, 2011),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공저, 돌베개, 2011) 등이 있다. </p>


   


 

정조는 만약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세손에서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면서까지

《승정원일기》의 임오년 처분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이런 요청을 받은 조는 결국

《승정원일기》 임오년 처분 기사를 삭제하도록 했다. 만약에 정조가 《승정원일기》

기록 자체에 대한 존중심이 있었다면 삭제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 조는 《승정원일기》

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승정원의 업무와 관련된 기록이므로 정치적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판단에서 《승정원일기》의 임오년 기사는 정치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유용하기 보다는 혼란만

부추기므로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승정원일기》를 개작하고 말살한 정조는

짧게 보면 승자라고 할 수 있으나 길게 보면 역사의 죄인이자 패배자라 할 수 있다.
--- p.72「제1장 / 잘못된 길에 발을 들인 군주들」중에서

정조가 지은 《행록行錄 》에 의하면 영조는 길을 걷다 개미들이 있으면 밟지 않고 피해 갈 정도로

마음이 여렸다고 한다. 영조는 감정이 복받치면 펑펑 울기도 했으며, 감정대로 행동하다

나중에 한없이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조는 마음이 여린 반면 체면을 아주...정조는 만약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세손에서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면서까지 《승정원일기》의

임오년 처분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이런 요청을 받은 조는 결국 《승정원일기》 임오년 처분

기사를 삭제하도록 했다. 만약에 정조가 《승정원일기》 기록 자체에 대한 존중심이 있었다면

삭제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 조는 《승정원일기》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승정원의

 업무와 관련된 기록이므로 정치적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판단에서 《승정원일기》

의 임오년 기사는 정치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유용하기 보다는 혼란만 부추기므로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승정원일기》를 개작하고 말살한 정조는 짧게 보면 승자라고 할

수 있으나 길게 보면 역사의 죄인이자 패배자라 할 수 있다.
--- p.72「제1장 / 잘못된 길에 발을 들인 군주들」중에서

정조가 지은 《행록行錄 》에 의하면 영조는 길을 걷다 개미들이 있으면 밟지 않고 피해 갈 정도로

 마음이 여렸다고 한다. 영조는 감정이 복받치면 펑펑 울기도 했으며, 감정대로 행동하다

나중에 한없이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조는 마음이 여린 반면 체면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런 영조인지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이 같은 여린 마음과 체면

중시를 빼놓고 영조의 치세 50여 년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을 생각해보자. 조선 500년 동안 왕실에서는 갖가지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뒤주 사건은 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이며 스캔들이라 할만하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일 수 있었는지, 그것도 무더운 여름날 8일이나 굶겨서 죽일 수 있었는지

 도무지 놀라울 뿐이다. 이런 놀라운 스캔들 이면에는 영조의 여린 마음과 체면 중시가 있었다.
--- pp.139-140「제2장 / 왕과 세자, 그 지독한 부자의 악연」중에서

1479년(성종 10년) 6월 1일, 이날은 폐비 윤씨의 생일이었다. 정상적인 부부 사이다면 성종은

 폐비 윤씨의 생일을 챙겨줬을 것이다. 하지만 성종은 그러지 않았다. 바로 그날 밤 성종은

폐비 윤씨 대신 다른 후궁을 찾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폐비 윤씨는 한밤중에 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남편 성종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윤씨는 폐위되었다.

돌아보면 성종과 폐비 윤씨는 처음엔 서로 사랑했고 둘 사이에 자 식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미움이 되었고, 그 미움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에는 이혼하게 되었다. 그들의 미움은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연산군에게 이어져 나라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이와 관련하여

《대학연의》의 ‘극명준덕克明峻德’이라는 구절을 인용해볼 수 있겠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기 마음의 덕부터 먼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고 자기 마음의 덕을

먼저 밝히지 못하면 그것이 자신의 비극은 물론 가정의 비극 나아가 나라의 비극이 된다는

교훈이 바로 ‘극명준덕’이다.
--- pp.269-270「제4장 / 궁중 여인들의 기막힌 일생」중에서

신령군이 추천한 인물들은 대체로 이유인과 같거나 아니면 뇌물을 준 사람들이었다. 명성황후와

고종은 신령군이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자들을 고관대작에 임명했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주로 굿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예컨대 이유인은 금강산 정기를 한양으로 가져와야 나라가

 태평해진다는 감언이설로 황후를 미혹시켜 금강산 1만 2천봉에 굿을 하게 했다. 그 결과 각

봉우리마다 쌀 1석과 돈 10냥을 바쳐 총 1만 2천석과 12만 냥이 허비됐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라는 비정상적으로 운됐고 국고는 고갈됐다. 결과적으로 볼 때 신령군은 명성황후의 수호

신령이 아니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황후와 고종은 사실상 일본의 포로가 됐다.

 그 와중에 신령군은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투옥됐다. 뿐만 아니라 1895년에 황후는 일본

낭인들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그렇다면 당시 황후의 진정한 수호 신령은 무엇이었을까?  

--- p.334「제5장 / 외세 앞에 무기력했던 지도자들」중에서 </p>



 

 

조선왕실사 전문 학자가 풀어내는
감추고 싶던 왕실의 23가지 뒷이야기


『조선왕조 스캔들』에서는 조선의 어리석은 군주와 탐욕에 빠진 왕비, 어리석은 왕자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비화 23가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 비화를 바탕으로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사서四書의 하나인『대학大學』의 깊은 뜻과 그 이치를 해설한 책

《대학연의大學衍義』의 내용을 소개하며 메시지를 전한다. 제1장 [잘못된 길에 발을 들인 군주들]

편에서는 나라를 전쟁터로 만든 이성계의 어리석은 복수심, 주색에 빠져 사람의 도리를 잊고

한글을 금지한 연산군, 조상 무덤을 도굴당해 거짓으로 복수한 선조, 기록을 중시했지만 왕실

기록을 왜곡한 정조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리고 제2장 [왕과 세자, 그 지독한 부자의 악연]

편에서는 조선 시대 최고의 바보 왕자 제안대군, 강제로 이혼 당한 겁쟁이 중종, 조카 인조의

 왕권에 도전한 삼촌 흥안군, 세 형제의 비극을 불러온 효종의 우애, 왕이 되고 싶었던 고종의

이복형들, 여종을 권력의 실세로 만든 정희대비와 인수대비, 성종에게 이혼 당한 폐비 윤씨,

재물을 탐한 인목대비 김씨, 굶어 죽은 광해군의 왕비와 세자빈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마지막 장은 제5장 [외세 앞에 무기력했던 지도자들] 편에서는 역술가에게 빠져든 결단력

약한 고종황제, 무당에게 미혹되어 나라를 기울게 한 명성황후, 친일 혁명가 박영효와 그가

일으킨 갑신정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처럼 조선왕조 500년 간 왕과 왕비, 왕자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실수와 잘못들을 반복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우리 또한 역사 속 왕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욕망과 모략 속에서 살고 있다.

다른 역사책에선 볼 수 없었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들을 통해 타산지석 삼을 만한 중요한 교훈들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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