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파문을 던진 책과 저자에 관한 위대한 기록
시대를 이끈 한 구절의 지성에 대하여
인류 구성원 다수가 문맹을 벗어나 책을 읽으면서 야만은 줄기 시작했다. 인류가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세상이 바뀐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언행의 기준과 동기를 제공받는 일이다. 그 기준과 동기가 모여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세상에 파문을 던진 책과 저자에 관한 기억이자 위대한 기록이다. 책을 읽으며 대중들의 자아와 시선이 달라졌고, 그 달라진 자아가 모여 세상을 바꿨다.
저자는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지성이었던 문장과, 오늘의 독자를 잇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다. 기꺼이 앞서나간 이들의 숨은 이야기는 독자가 진정으로 사유하고, 세상을 직시하는 눈을 갖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도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 의식이 살아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단한 ‘한 문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저 자 : 허 연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집 다락방과 학교 근처 도서관에서 손때 묻은 고전들을 꺼내 읽으며 어른이 됐다. 고전을 만나면서 세상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았고, 지금도 ‘독서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라는 말을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단행본 도서의 베스트셀러 유발 요인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시 창작에서의 영화이미지 수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현재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오십 미터』,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고전탐닉』등이 있다. 한국출판학술상, 시작작품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의 말
1부 고독이라는 내면
상반된 이미지 사이를 줄타기한 대문호
가장 많이 대출되는 소설 써내고 은둔 속에 살다간 ‘호밀밭의 파수꾼’
아웃사이더 개념 설계한 영국 문단의 이단아
[밤으로의 긴 여로] 쓴 희곡의 아버지
정치적 불운 속에서 추사체 완성한 금석학 대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휴머니즘 스토리텔러
2부 숨지 않은 감정의 고귀함
욕망에 충실했던 신의 어릿광대
내 생각이라 믿는 것 대부분은 타자에게 빌려온 것
부엌을 페미니즘 공간으로 탈바꿈한 작가
170년 전 유럽을 흔든 사랑학개론
꿈꾸지 않는 자,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감정도 공적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3부 저항의 미학에 관하여
문명의 어두운 이면 파헤친 선원 출신 대문호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용감하지 않았다
나치에 저항한 행동주의 신학자이자 목사
카스트, 남존여비, 종교차별에 도전한 작가
집단주의의 광기를 파헤친 거리의 철학자
윤리 아닌 힘의 역학이 집단을 움직인다
경험 따른 신중한 변화 중시한 ‘보수의 품격’
권위주의가 과학을 바꿔선 안 된다
애도의 방식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을수록 무력해진다
재물은 하늘이 내리지 않고 백성이 만든다
인간은 꺾이지 않는다 외친 휴머니스트
아름다운 문장으로 강제수용소 비판한 노벨상 작가
4부 유한한 시대와 무한한 나
20세기 유럽의 풍요와 몰락을 모두 기록한 작가
알베르 카뮈의 영적 스승, 신비로운 산문가
낯설고 강렬한 문장, 작가들에게 존경 받는 작가
유배지에서 인생의 의미 깨친 초월의 시인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
시인은 숨겨진 본질 꿰뚫어보는 견자
야만에서 순수를 길어 올린 시인
종교소설 벽 허문 일본 문단의 거장
존재에 관한 묵직한 질문과 장엄한 가르침
세밀화로 그려낸 생의 본질, 순문학 대표작가
초연결사회의 그늘을 지적하다
5부 달리 앞서 간다는 것
알파벳과 자전·공전 조선에 알린 선구자
욕망은 곧 지혜의 시작, 르네상스 밑그림 그린 이슬람 학자
20세기 초 파리 문단을 이끈 서점 주인
‘한’과 맞바꾼 한국문학의 대서사시
냉소를 문학으로 격상한 블랙코미디의 달인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한 영어의 아버지
영화 [붉은 수수밭] 원작 쓴 대륙의 마르케스
소설에 장소성 구현한 현대문학의 장인
지식인은 이미 만들어진 진부함과 싸우는 사람이다
다락방에서 우주를 보다
6부 새로운 지성을 위하여
의심이 없으면 과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행동 없는 이성 경멸한 수학자이자 사상가
인터넷, 달 착륙 예언한 공상과학 소설의 지존
위트로 현실 모순 극복한 20세기 초 대문호
세상은 인간이 개선된 만큼만 나아진다
인류는 결국 기억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해지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가 인류를 도덕적으로 만들었다
기회의 중립화 외친 하버드의 성자
“혹시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싶지 않소? 바로 내가 플라톤의 『국가』라오. 아니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읽고 싶소. 그렇다면 시몬스를 찾아가시오. 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요.”
참 재미있는 설정이다. 플라톤을 읽은 사람은 곧 플라톤의 분신이고, 아우렐리우스를읽은 사람은 곧 아우렐리우스의 분신이다. 사실 이 소설적 과장은 매우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어떤 책을 읽고 그것에 공감하고,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미 그 책의 분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접신한 책은 곧 나의 분신이 된다. _‘저자의 말’에서 --- p.5
“남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고귀한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자가 결국에는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_헤밍웨이 --- p.14
“바른 길을 버리고 오묘한 곳에서만 도를 찾으려 한다. 허공을 딛고 용마루에 올라가 창문의 빛과 다락의 그림자로 방 아랫목 물 새는 곳을 찾으려 하니 끝내 찾을 수가 없다.”
용마루에 올라가 어떻게 방 아래 물 새는 것을 찾겠느냐는 추사의 지적에서 공론보다는 시런을 중시한 그의 학풍이 읽힌다. --- p.32
“위대하게 혹은 소박하게, 혹은 현명하거나 어리석게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 단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_헨리 밀러 --- p.40
“공리주의적 계산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유는 맹목적이다. 이런 태도는 질적인 풍성함, 인간 존재의 개성과 내면적 깊이, 그리고 희망, 사랑, 두려움 같은 걸 보지 못하게 한다.” _마사 누스바움 --- p.60
『암흑의 핵심』은 사실 ‘읽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사색하는 소설’이다. 그만큼 깊고 난해하다. 묘사나 줄거리 진행보다는 상징과 암시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커튼처럼 둘러선 밀림 뒤쪽에서 우리 머리 위를 선회하듯 북소리가 허공에 걸려 있었다. 그 북소리가 의미 하는 것이 전쟁인지, 평화인지, 아니면 기도인지 우리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 p.69
“군부가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그들이 항복을 질질 끌고 있는 건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생물학적 본능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증오할 권리가 있다.” _오오카 쇼헤이 --- p.70
이것이 태평양전쟁의 본질이다. 소시민을 총알받이로 앞세워 대동아공영권이니 천황만세니 떠들어댄 건 위정자들이었다. 그들은 한술 더 떠, 죽으면 신으로 태어난다는 속임수 내세관까지 주입시켰다. 사실 모든 전쟁은 비슷한 속성을 지닌 평범한 사람을 협박해 전사로 포장한다. --- p.73
“자신이 우월하다는 근거가 빈약한 사람일수록 국가, 이념, 인종, 종교 등 자기가 지지하는 명분에 몰두하는 맹신자가 된다.” _에릭 호퍼 --- p.82
2009년 노벨상을 수상한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개성 넘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소설에 등장하는 상징과 묘사가 매우 시적이고 아름답다. 수용소 문학이 이렇게 시적인 문장으로 쓰여도 되나 싶은 정도다. 가장 혐오스러운 상화을 미학으로 승화한 그녀였다.
“감히 그리움을 앞세울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항상 똑같은 장면이 돌아가고, 세상과의 격리가 익숙해지면 그리움은 이미 기억이 됐다.” --- p.116
장 그르니에는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고 말했다. 그는 태생적으로 경이驚異를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경이는 크고 위대한 것들에만 있지 않다. 보도블록 사이에 얼굴을 내민 작은 풀 한 포기가 얼마나 경이인가. 우리를 얼마나 살고 싶게 하는가. --- p.127
삶은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잠시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_크리스토퍼 메릴 --- p.136
여러 경험을 종합하여 과장된 것은 제거하고 실제에 맞는 것을 숭상함으로써 일통一統의 학문을 완성하라. _혜강 최한기 --- p.166
이븐 시나는 자기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나눈 희대의 지성이었다. 그의 책 『치유의 서』에는 ‘육체는 여행의 목적이 달성됐을 때 떠나보내야 하는 짐승이다’라는 심오하게 번뜩이는 문장이 등장한다. 연금술이나 신봉하던 당시 유럽인보다 그가 얼마나 앞선 세상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구절이다. --- p.173
“모든 경험은 하나의 아침이다. 그것을 통해 미지의 세계는 밝아 온다. 경험을 쌓아 올린 사람은 점쟁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_레오나르도 다빈치 --- p.232
모두의 지성이 된 그 문장은 계속해서
세상이 진보로 향하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인간 중심의 업적은 책이 만들어낸 것이다. 노예제나 여성차별 같은 말도 안 되는 만행이 자행되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문맹’이다. 소수의 몇 사람에게만 책이 주어졌던 시대, 그 시대가 곧 야만을 가능하게 했다. 책이 창문을 열어주기 전까지 인간은 인간답게 산 적이 없었다. 인류 구성원 다수가 문맹을 벗어나 책을 읽으면서 야만은 줄기 시작했다. 마녀사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마녀사냥을 자행하는 사람들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마녀사냥이 사라진 건 아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에 눈뜬 사람들이 마녀사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에 마녀사냥이 사라진 것이다.
앞선 인식과 문장으로 시대를 이끈 이들이 있다. 세상에 꼭 필요한 파문을 던진 이들의 문장을 마음 깊이 새겨 넣은 저자는 말한다. “책의 한 문장을 가슴으로 외우는 누군가가 있는 한, 인류는 악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달리 앞서나간 이들이 깨친 생의 본질, 저항 정신은 한 문장으로 남았다. 다시 책을 읽어 만나게 된 그들의 숨은 이야기는 또 하나의 위대한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한다. 집단주의의 광기를 파헤친 에릭 호퍼의 한 문장, 자기성찰로 무장한 리처드 파인만의 허울뿐인 권위에 대한 지적, 민중의 고통을 수면 위로 퍼 올린 막심 고리키의 작품 등이 그렇다. 의식이 살아있는 삶은 진정한 사유와 벗 삼은 철학자의 삶과 같다. 한 문장을 들여다본 독자는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세상을 직시하는 눈 또한 키우게 될 것이다.
매일경제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을 모아 만든 두 번째 책이다. 시대를 이끈 책과 저자의 이야기, 모두의 지성이 된 위대한 문장은 계속해서 세상이 진보로 향하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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