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고난 승리자들

을의 노래-19세기 말 활약한 어느 의병 선봉장의 이야기/ 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

by It works 2015. 8. 8.

 


 

 

평범한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평민과 양반이 함께 봉기한, ‘호좌 창의군’의 이야기

이 소설은 1895년(을미년) 가을부터 1896년(병신년) 봄까지 약 6개월 간 경기도 남부, 충청북도 북부, 강원도 남부 등에서 활약한 초기 의병 ‘호좌 창의군’에 관한 이야기이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강행에 맞서 위정척사를 부르짖던 유림들이 격앙하여 의병을 일으킨다. 그리고 부패한 관리, 독선적인 향반에게 짓눌려 살던 농노와 평민들도 유림을 따라 의병에 가담한다. 처음부터 융화될 수 없는 두 부류가 동상이몽 속에서 결합된, 의병의 이야기를 생생히 만난다.

저자 소개

저자 : 전영학

충청일보 신춘문예, 한국교육신문 현상문예 등에 단편소설이 뽑혔고, 20여 년 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으며, 충북 황간고교, 충주여고, 청주중앙여중 교장을 역임했다. 에세이집 《솔뜰에서 커피 한 잔》, 소설집 《파과》를 냈다.

사실 이식은 개화에 송두리째 미쳐버린 건 아니었다. 나이 어린 민영익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모름지기 얌심 나는 것도 아니었다. 밑바닥에 엎드린 무지렁이건, 지체 있는 양반이건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터득한 것이다.
사람들이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나서야 개화든 척화든 화두에 올릴 일이었다. 이것은 비단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호혜롭고 평등한 질서가 있어야만 그 나라에 몸 붙여 사는 백성들이 안락해 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백성 개개인은 나라의 근본이니 지위 고하 없이 그 삶이 어찌 중하지 않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적개심에 불타는 논객들은 야수처럼 위험할 뿐이고, 야수의 습성대로 처신하는 그들이 중전마마도 시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23p

태열이 주저앉으며 주문을 외자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 무리들의 입에서도 일제히 주문이 일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재차 총성이 일었고 총탄이 그들 귓밥을 스칠 듯 날아갔다. 아이쿠! 한 사내가 나뒹굴었다. 궁궁을을, 궁궁을을…, 고의 춤이나 저고리 섶에 찬 부적을 떠올렸다.
“진격, 진격!”
오뚝이처럼 일어선 태열이 앞으로 내달으며 소리쳤다.
“탐관오리를 잡아야 한다! 왜양놈을 죽여야 한다!”
그를 뒤따르는 젊은 남정네들이 무기를 부르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향교 뒷담에서 다시 총성이 콩 볶듯 일었다. 퍽 퍽 썩은 짚단처럼 옆 사람이 쓰러졌다. 핏방울이 튀었다.
--- p.82

“상것을 누가 만든 것입니까? 하늘입니까? 양반과 상것이 도대체 뭣이 다르다는 겁니까? 상것은 날 때부터 표를 달고 나옵니까? 다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면 반상의 위치도 바뀌는 법이지요. 지금 상것이 옛날에는 거들먹거리는 양반으로 행세한 적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늘의 이치에 맞게 사람을 바꾸면 상것도 사람 구실을 하게 됩니다. 저도 못난 흰고무래 새끼로 태어나 더럽고 서러운 인생 어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해 하다가 이 이치를 깨달았사온데 한번 알고 나니 세상이 밝아지고 초목이 비로소 푸르러 보였습니다. 어른께서도 어풀 이 이치를 받아들이십시오. 떡두꺼비 같은 자식들한테도 한 평생 그 탈을 쓰게 하실 겁니까?”
--- p.104

“우리가 가는 길은 광명한 길이며, 바른 길이며, 신의의 길입니다.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우리 창의가 임금께 상달되어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싸워야 할 것입니다. 물론 머리털 치는 것부터 당장 폐지해야 합니다. 나아가 머리털 치는데 앞장 선 수령들을 응징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놈들은 제 나라로 돌아가야 하고 토왜는 모조리 잡아 처벌해야 합니다.”
다시 군사들에게서 환호와 박수가 일었다. 이춘영이 스스로 감격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하단하여 이백 군사의 얼굴을 일일이 훑어보며 손을 잡아 주었다. 대개가 아는 얼굴, 이웃집이나 이웃마을 사람들, 국모의 원수를 갚고 머리털을 지키기 위해 머나먼 고행의 길에 뛰어든 이름 없는 백성들이었다

현시대 ‘을’의 삶에도 희망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그들의 이야기

작가 전영학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 소설을 탄생시켰다. 지금 이 시대가 공감할 만한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대하소설을 쓰고자 했고, 그런 계기를 바탕으로 이 소설이 태어나게 되었다. 작가는 19세기 말 봉기한 초창기 의병들인 ‘호좌 창의군’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했고, 소설 속 인물들과 시대적 상황들을 유려한 필체로 그려간다. 한 나라의 국모인 명성황후가 일본군들에 의해 시해되었고, 청나라 군사와 전투가 일어났으며, 동학혁명과 단발령이 시행되어 유림들이 궐기하기도 했다. 이런 시대상 속에서 농노와 평민들이 봉기한 데 이어 부패한 관리에 반대하는 양반들도 의병에 가담해 세상을 변화시켜 보고자 과감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농노와 평민들은 자체적인 우국충정도 있었겠지만, 부와 권력을 지닌 양반들에 의해 떠밀려 의병에 가담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융화될 수 없는 양반과 평민, 농노들이 동상이몽 속에 결합된 조직체가 의병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도 밤마다 줄도망을 치는 군사들을 다스리지 못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혼란의 조선시대,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19세기 말 조선을 사는 평범한 인물이 되어 의병들의 전력투구와 전투를 벌이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일상의 고단함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의병의 삶에 묻어나는 애환부터 치열한 전투 중에서 피어나는 사랑까지, 여러 어려운 상황 중에도 그렇게 한 인간의 일생은 기쁨과 슬픔을 담은 채 전개되어간다. 나라의 어려움과 그로 인해 살기 어려워진 평범한 이들, 부패한 세력에 투항하기 위해 봉기해서 의병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어쩌면 지금을 사는 대한민국의 소시민과 많이 닮아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희로애락 또한 많은 공감과 위로를 안겨줄 것이다. 혼란의 시대 19세기 말, 우리 선조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갔고 역경들을 이겨냈는지 작가는 독자들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며 현재의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댓글